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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6. SAT

LOVE IS LIKE ART 예술 같은 웨딩 사진

플로럴 디자이너와 사진작가가 만나 예술 작품 같은 웨딩 사진을 남겼고, 그 전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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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루 모라이 다랑이밭은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 웨딩 촬영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여전히 전통 의상이 일상복인 쿠스코 시민들. 웨딩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계속 따라다닌다.



    지난 7월, 서울 성북동에 이국의 싱그러운 향기를 싣고 온 전시가 열렸다. <The Accidental Tourist>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한 아티스트 부부가 남미를 여행하며 찍은 사진과 그 여행에서 받은 영감을 꽃으로 표현한 작품이 어우러졌다. 그중 이국의 풍경을 배경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과 파프리카, 레몬, 여주 등 형형색색의 채소로 장식한 꽃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당장 여행을 떠나고픈 충동을 안겼다. 웨딩 사진의 주인공인 정훈희 작가는 자신을 ‘플로럴 디자이너’라고 소개한다. 다소 생소한 이 단어는 플로리스트의 영역을 넘어 정원을 디자인하고, 때로는 더 넓은 차원의 대지를 구상하는 등 꽃과 식물을 소재로 한 모든 예술을 아우른다. 실제로 정 작가는 국내에서 활동한 짧은 기간 동안 남산공원과 광화문광장을 조경했다. 런던에서는 르메르디앙 등의 특급 호텔과 까르띠에, 불가리 등 명품 숍의 꽃 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했다. 지독한 독신주의자였던 그녀는 굴곡진 삶에서 지극한 사랑으로 버팀목이 되어준 영국인 사진작가 조너선 윌리엄스를 만나며 인생 경로를 수정했다. 오십 줄에 들어 결혼한 후 그녀는 성대한 결혼식 대신 남미 여행을 택했고, 무모하고 막연했던 그들의 여행은 2년 8개월의 대장정으로 이어졌다. 특히 둘의 여행이 빛난 이유는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남미의 관광 명소 혹은 대자연에서 촬영한 결혼사진 덕분. 현지에서 구한 꽃으로 만든 부케를 든 플로럴 디자이너 아내를 사진작가 남편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한 사진들은 그 자체로 눈부신 예술 작품이다. 그 사진들을 보면 그들의 러브 스토리가 궁금하기 마련. 만남부터 특별했던 그들의 결혼 이야기를 시작한다.


    she says... 원래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식견을 넓히고자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우연한 기회에 플로럴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다. 일본에서 플로럴 디자이너로 6년간 활동한 나는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런던에서 다시 초심자의 마음으로 들어간 플로럴 디자인 학교 졸업을 앞둔 때였다. 남들보다 배움의 길이 길었기에 완벽에 가까운 졸업 작품을 남기고 싶었다. 창의적이면서 완성도 높게 작업하는 일인 만큼 그것을 온전히 사진에 담는 일이 중요했다. 하지만 마땅한 사진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일본인 친구에게 고충을 토로하자, 영국에서 배우 생활을 하던 친구는 뜻밖의 해답을 내놨다.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준 영국인 사진가가 동양인 모델을 찾는다며, 어쩌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니 연락해 보라는 이야기였다. 그 사진가가 바로 조너선이었다. 나는 그에게 졸업 작품 촬영을, 그는 내게 모델 일을 부탁하면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곧 연인으로 발전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런던에서 경력을 쌓은 나는 한국에 돌아가 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해 보고 싶었다. 조너선은 그런 내 선택을 묵묵히 지지했고, 내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부단히 나를 보러왔다. 그는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내가 사기를 당하고 파산에 이르자 런던의 집을 팔아 달려오기도 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한달음에 와준 그를 보며 나는 신념처럼 지켜온 독신주의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생활에 지친 나는 조너선을 따라 영국으로 돌아갔다. 조너선은 무력감에서 도통 벗어나지 못하는 내 주위를 환기시키기 위해 여행을 제안했다. 영국 곳곳에 있는 정원을 둘러보는 일로 시작한 여행은 이탈리아로 그 반경이 점점 넓어졌다. 낯선 곳에서 몇 달을 머물며 점점 호기심 강한 본모습을 되찾은 나는 성대한 결혼식을 대신해 남미로 모험을 떠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특히 볼리비아에 펼쳐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는 순간을 상상하며 그 마음은 점점 부풀어갔다. 나는 남미에 가져갈 웨딩드레스를 고르느라 밀란 시내를 휘젓고 다녔다. 밀란은 패션의 도시답게 아름다운 드레스가 넘쳐났다. 하지만 비좁은 캐리어에 구겨 넣어야 하고, 현지에서 손질할 수 있는 여건이 받쳐주지 않을 확률이 높았기에 잘 구겨지지 않는 소재로 골랐다. 그렇게 실용적인 웨딩드레스 세 벌을 안고 나는 무작정 남미를 향했다.
    애초에 2개월 남짓 머물 계획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해 칠레, 페루, 에콰도르를 거쳐 45일 후 콜롬비아에서 여행을 갈무리할 생각에 귀국 항공권도 미리 끊어 갔다. 그런데 남미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크고 구석구석 놓칠 수 없는 매력을 품고 있었다. 첫 행선지인 아르헨티나에서부터 일정이 무한 지체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에서 헤매기를 보름쯤 거듭하다 보니 과연 계획한 날짜에 콜롬비아에 당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과감히 항공권을 포기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여행에 임하기로 결심했다. 아르헨티나와 페루에서 각각 3개월을 머무르다 보니 어느덧 계절은 봄에서 여름과 가을을 거쳐 겨울로 변했다. 남미는 계절 변화가 뚜렷하지 않은 만큼 겨울에도 여행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조너선이 크리스마스만큼은 가족들과 보내고 싶어 해서 잠시 여정을 멈추고 런던으로 돌아갔다. 세 차례의 남미 여행 중 이때 웨딩 사진을 가장 열심히 찍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명 관광지를 첫 여정에서 거의 다 둘러봤다. 우유니 소금사막, 이구아수 폭포, 페리토 모레노 빙하, 마추픽추 등은 물론, 복닥거리는 도시에서 이름 모를 오지까지 정말 다채로운 풍경을 배경 삼아 원 없이 사진을 찍었다. 드레스가 기니 허리춤에 잡아매고 산을 오르고, 해진 부위를 꿰매는 게 일상이던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절로 웃음이 난다.



    딩드레스 아래는 주로 부츠를 신었다.



    마추픽추에서 라마와 함께.



    플로럴 디자이너 정훈희와 남편인 사진가 조너선 윌리엄스.



    동양인도, 금발도 보기 힘든 남미 오지 마을에서 금발로 탈색한 동양인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다니니 가는 곳마다 까만 눈들이 나를 쫓느라 바빴다. 그 덕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도 여럿 남겼다. 페루 동남쪽에 위치한 고대 도시 쿠스코는 곳곳에 영겁의 세월을 고스란히 품은 건물들이 남아 있다. 고풍스러운 도시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기 위해 웨딩드레스를 입고 숙소를 나왔을 때의 일이다. 전통 의상을 입은 쿠스코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다음 순간 일제히 내 뒤를 따랐다. 그들이 한순간 행렬을 이루자,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마저 멈춰 선 채 모든 운전자와 승객이 선두에 선 나를 바라봤다. 내가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 서기라도 하면 뒤따르던 모든 사람이 나를 중심으로 도열하고는 저마다 포즈를 취했다. 그들 중에는 옆구리에 어린 양을 낀 사람도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해프닝은 경찰이 출동해 겨우 일단락 났다. 아르헨티나 페리토 모레노 빙하 투어에 참여한 날에는 치맛단이 아이젠에 걸릴까 하여 드레스를 더 단단히 여미고 그 위에 패딩을 걸쳤다. 한 팀을 이룬 관광객 20명 중 내가 웨딩드레스를 입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이는 없는 듯했다. 가이드가 포토 존이라며 기념 촬영할 시간을 주자, 나는 주저 없이 패딩을 벗고 긴 치맛단을 풀어헤쳤다. 그 순간 여행객들은 하나같이 놀라며 자신의 일행이 아닌 나를 카메라로 훔치기에 바빴다. 멀찍이 떨어진 다른 투어 팀원들이 연발하는 감탄사가 메아리가 되어 들려왔다. 대포처럼 큰 카메라들이 일제히 나를 향하자, 나는 순간 창피해서 어쩔 줄 몰랐고 낯을 많이 가리는 조너선은 한동안 카메라를 꺼내지 못했다.


    사실 남미 여행이 달콤한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해발고도 3000~ 5000m에 달하는 오지 마을을 오가며 고도가 조금씩 높아질 때마다 고산병으로 앓아눕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티 한 점 없이 맑고 순수한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이 몹시 그리웠다. 첫 번째 여행에서 분실을 걱정해 두고 갔던 옷과 액세서리, 가방 등을 과감히 챙겼다. 조너선도 아끼는 고가의 카메라와 렌즈를 가방에 담았다. 남미 여행의 2막은 에콰도르에서 열었다. 에콰도르는 불가리아와 함께 세계에서 장미가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손꼽히는 등 내게는 의미가 남다른 장소였지만, 우리는 금세 안데스산맥을 따라 내려앉은 작은 오지 마을들이 그리워졌다. 에콰도르를 시작으로 미지의 세계를 우선적으로 둘러보고자 했던 계획을 대폭 수정한 우리는 또다시 페루로 향했다. 두 번째 찾은 페루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마을이라도 꽃집이 하나쯤 있다는 사실이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마을마다 디테일이 조금씩 다른 전통 의상과 모자를 구경하고 사 모으는 재미도 쏠쏠했다. 우리는 페루에서 평생을 바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인생 최악의 사건을 맞닥뜨리기 전까지 말이다.


    안데스산맥을 넘나들며 여행객의 발길이 뜸한 오지 마을을 찾아다니던 중 잠시 경로를 이탈했다. 에메랄드빛 물감을 탄 듯 청아한 색을 띠는 호수 69개가 모여 있는 와라즈는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명소다. 와라즈 호수가 품은 자연의 힘은 대단하여 우리를 몇 날 며칠씩 주저앉혔다. 그곳에 여장을 풀고 걸으며 호수를 감상하는 일을 반복하니 내 마음도 호수처럼 서서히 명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번잡한 머릿속에 호숫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 듯 깨끗하고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이처럼 와라즈를 뒤로한 채 또 다른 수행의 길에 들기 위해 버스 터미널을 찾았다. 산중에 위치한 이 터미널은 운행하는 버스 이용료가 비싸 관광객 일색인 곳이었다. 무거운 짐을 맡기고 노트북, 카메라, 현금이 든 가방을 옆에 둔 채 버스를 기다리던 찰나였다. 터미널 문을 열고 허름한 차림의 현지인 셋이 들어왔다. 그들의 등장이 마냥 신기했던 나는 해맑게 웃으며 “저 사람들이 이 버스를 탈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들이 우리 가방을 노리고 잠입한 좀도둑이라는 사실은 상상하지 못한 채. 와라즈 호수를 보고 마음이 한없이 열린 탓에 그들의 뻔한 작전에 속아넘어간 거다. 다른 귀중품도 아닌 카메라였기에 우리는 분을 삼키며 런던으로 돌아가야 했다.




    웨딩 드레스 차림으로 어떤 모험이든 즐겼다. 




    남미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



    지난 여행에서 받은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다시 카메라를 장만하고 남미행 항공권을 알아봤다. 이쯤에서 남미 여행을 접기에는 그 대륙에 밟지 못한 구석이 너무 많았다. 이번에는 멕시코의 한 지역에 정착해 그곳의 삶을 영위하며 스페인어를 배우기로 했다. 유명 관광지들을 뒤로한 채 가난한 산골 마을 산크리스토발데라스카사스에 여장을 풀었다. 그곳에서 운 좋게 대궐 같은 집을 빌리고, 착실히 스페인어 학원과 살사 학원에 등록했다. 두 달 동안 내 스페인어와 살사 실력은 답보 상태에 머물렀지만, 어김없이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아갔다. 하루는 우리가 빌린 집의 주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지나는데, 꽃 무더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멀쩡한 꽃이 버려지는 게 안타까워 주인아저씨한테 허락을 받고 꽃을 다듬었다. 시들어가던 꽃에 손길이 닿자 조금씩 화사한 빛을 되찾는 모습에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감에 젖어 작업을 이어갔다. 놀란 주인아저씨는 다음 날 파티가 있다며 꽃 장식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다음 날 아침 꽃 시장에 들러 재료를 고르는데, 시골이어서 꽃 종류가 한정적인 데다 마음에 드는 꽃병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장고 끝에 시장에 널려 있는 레몬과 오렌지를 한아름 샀다. 크기와 색이 제각각인 레몬과 오렌지의 윗동과 밑동을 잘라 테이블에 고정한 후 꽃을 꽂았다. 꽃을 꽂은 크고 작은 과일을 한데 모으니 오밀조밀하고 화사한 게 제법 볼만했다. 커트러리와 와인 잔에도 꽃을 하나씩 묶었다. 그때부터 나는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에 불려 다니며 공간을 꽃으로 채워나갔다. 그 과정을 반복하며 내가 꽃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오랜만에 새삼 깨달았다.


    남미 여행의 대미는 쿠바에서 맞을 생각이었다. 마지막 행선지인 만큼 쿠바에서는 좀 더 우아하고 멋스러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리하여 멕시코에서 쿠바로 넘어가기 전 뉴욕에 잠시 들러 화려한 드레스를 구입했다. <The Accidental Tourist> 전시 포스터에 쓴 사진도 배경이 쿠바고, 뉴욕에서 새로 산 드레스가 있었기에 건질 수 있었다. 여행 비자가 만료되며 자연스럽게 아메리카 대륙을 빠져나온 우리는 밀란에서 보름을 보낸 후 영국으로 돌아갔다. 영국에 도착한 후에도 웨일스에 있는 시댁을 기점으로 가든 투어를 이어갔다. 서울행을 결정했을 때도 베트남, 중국을 여행하며 에둘러 들어왔다. 우리는 결혼한 이래 3년간 쭉 여행했다. 그동안의 여정은 지난 상처를 말끔히 치유하기에 충분했다.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찍은 사진들은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위안이 될 것이다. 또 그 드레스들을 남미 오지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새로운 삶의 목표를 찾았다.



    꽃병 대신 레몬과 오렌지를 잘라 꾸민 파티 테이블.



    아르헨티나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배경으로 선 순백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