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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THU

TRUE STORY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맨스 그 이후' 결혼의 진실을 알려주는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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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부는 드레스를 입은 바보가 아니다. 꽃길만 걷자고 맹세하는 대책 없는 신부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설령 당신의 친구가 평소 보지 못한 수줍음 가득한 얼굴로 청첩장을 들이민다고 해서 그녀가 마냥 장밋빛 미래에 젖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크든 작든 예상 밖의 고충을 맛본다. ‘이 결혼 멈추고 싶다’ 혹은 ‘여기서 멈추면 어느 정도 욕을 먹을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한다. 속으로 지금 ‘나는 아니었는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뭐랄까, 나로서는 당신을 성인군자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한창 결혼을 준비하며 번민과 고뇌가 많은 예비신부가 있다면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결혼은, 미친 짓이기 전에, 힘든 짓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은 곧 펼쳐질 본 게임의 전초전이자 축약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내가 시댁 복이 있는지 없는지 베타 체험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당신을 겁주려는 건 아니다. 결혼 후 고통과 좌절만 있는 건 아니니까. 전혀 새로운 종류의 안정과 행복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대신 그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숙제도, 넘어야 할 크고 작은 문제도 많다는 뜻이다. 내 집 마련, 출산과 육아, 명절이라는 난제 등 커다란 사안부터 어느 날 갑자기 시월드 단톡방에 초대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하는 소소하고도 치명적인 문제까지 산 넘어 산이다. ‘현실감 만렙’ 웹툰 <며느라기>가 이처럼 폭발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는 것도, <B급 며느리>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온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더구나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서서히 나이 들어간다는 것의 서글픔, 죽을 때까지 한 남자와 함께해야 한다는 의무나 책임 또한 무게로 다가온다. 내 경우만 해도 싱글 시절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실히 축적해 온 나름의 삶의 요령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 후 발생하는 아주 낯선 양상의 문제들 앞에 망연해질 때가 가끔 있다. 아니, 많다. 그러다 보니 결혼 후에는 영화도 다르게 보인다.


    마치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만큼 현실적인 신혼의 공기를 담은 <잠 못 드는 밤>(감독 장건재)이라는 영화가 있다. 나영석 PD표 <신혼일기>와는 완전히 정반대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요가 강사인 주희와 멸치 공장에 다니는 현수는 작은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결혼 2년 차 부부로, 소박하지만 아늑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밤이면 동네에서 알콩달콩 자전거 페달을 밟고, 섹스는 여전히 뜨겁다. 그런데 이들에게 찾아온 균열의 시작은 2세 계획이다. 여자는 묻는다. “우리에게 아이가 있으면 어떨까?” 그러나 남자는 어물쩍 말을 돌린다. 이 심대한 간극. 두 사람은 한 침대에서 밤새 뒤척인다. 한쪽은 아이가 있는 삶에 대한 기대감이, 다른 한쪽은 두려움이 더 큰 것이다. 두 마음이 너무도 팽팽하게 이해가 되어서 보는 나까지 심란해졌다. 난 사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자고 일어나 눈 떠보니 이미 애가 태어나 있고, 또 어느 정도 자라 있어서 혼자 책가방 메고 학교 가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정작 그런 시기가 찾아온다고 해도 나름의 풍파는 끊이지 않을 거다.


    <디스 이즈 40>(감독 저드 애퍼타우)의 경우는 <잠 못 드는 밤>과 달리 오래된 부부의 이야기다. 아내의 생일,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비아그라를 삼킨다. 둘이 한창 달아오를 무렵, 남편은 칭찬받고 싶어서 아내에게 비아그라 얘기를 꺼내지만 아내는 순간 감정이 팍 상해버린다. “더 이상 내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거야?” 그러자 이번엔 남편의 풀이 죽는다. “이젠 나도 예전 같지 않단 말이야.” 남편은 아내를 위해 모처럼 ‘터보 엔진’을 달았는데, 아내는 남편의 오리지널 버전인 ‘미디엄 소프트’가 더 좋다고 말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오래 산 부부의 공력이 느껴지는, 친밀하다 못해 적나라한 대화와 말싸움이 영화의 러닝타임 절반 이상을 채우지만, 이 피곤할 정도의 치열함이 도리어 그들의 식지 않은 사랑을 증명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아직도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고 할까. 마흔을 눈앞에 두고 자꾸 구차하게 만 나이를 주장하는 아내와 이젠 정크푸드와 헤어지고 콜레스테롤 수치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남편의 이야기가 서글프면서도 크게 안심이 되었다. 사람 사는 건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권태기와 배우자의 바람이라는 결혼 유지의 최대 변수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TV에 나온 이효리가 “솔직히 남편이 아니라 내가 바람 피울까 봐 더 걱정”이라는 발언을 했을 때 난 남편 옆에서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탄복했다. 이효리는 한국에서 가장 솔직한 여성이다! 그렇다. 이건 성별을 떠나 우리 모두가 품고 있을 결혼 제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일 것이다. 과연 인간이 죽을 때까지 한 사람하고만 가능하다고? 내가 <우리도 사랑일까?>(감독 나이젤 콜)라는 영화를 보면서 공포를 느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겉으론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결혼 5년 차 커플 마고와 루는 권태기라는 위태로운 절벽 앞에 서게 된다. 착하고 유머 넘치는 남편을 두고 왜 마고가 허세 넘치는 인력거꾼 대니얼에게 끌리는 것인지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됐지만, 한번 흔들리기 시작한 마음은 걷잡을 길 없는 산불 같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가장 괴로운 것은 마고일 것이다. 새로운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해 남편을 배신하고 가정을 깨뜨릴 것인가, 그냥 남편 곁에 멈춰 서서 안정적이고도 무료한 여생을 보낼 것인가. 남편은 물론 시댁 식구의 얼굴까지 세트로 마고의 눈앞에 어른거리지만, 대니얼만 만나면 짜릿함에 몸을 떨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영화의 결론은 꽤(!) 급진적이다. 하지만 누구도 마고를 두고 쉽게 손가락질할 수는  없을 거다.


    부부관계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니 위기 앞에서 정반대의 대처를 보였던 두 부부를 소개하면서 이 장황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바로 <트럼보>(감독 제이 로치) 대 <블루 재스민>(감독 우디 앨런)이다.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1940년대 할리우드를 그린 <트럼보>의 천재 시나리오 작가 트럼보는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혀 블랙리스트에 올라 형을 살고 출소 후에도 가명으로 생업을 이어간다. 정치적 외압에 굴하지 않는 트럼보의 꼿꼿함도 놀랍지만, 그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아내의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이다. 반면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은 사업가인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홧김에 평소 불법을 저질러오던 남편을 FBI에 고발한다. 졸지에 무일푼 신세가 된 재스민의 영혼은 날로 피폐해져만 간다. 재스민은 남편의 사회적 명성과 부가 곧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결혼생활은 서로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 연대와 유대감으로 묶인 이상적 공동체와 당장의 안위를 뒤흔들거나 때로는 가혹하게 보일지언정 구성원 개인이 진정 원하는 것을 서로에게 요구하는 투쟁적 공동체 사이의 부단한 교차일지도 모른다. 부부의 안녕을 위해 각자의 나를 버리든가, 각자의 나를 위해 부부의 안녕을 위협하는 선택지 안에서의 끝없는 갈등과 결단이 결혼생활 아닐까. 이 과정의 피로와 고통마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기에 어렵고도 또 어려운 일이다. 나를 포함한 모든 부부의 건투를 빈다. ?


    김현민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