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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30. SAT

KNOCK KNOCK 그 부부의 사정

출산 계획이 있는 30대 중반 남녀가 산부인과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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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소 나이는 몇 살인가요?
    올해 서른 넷. 지난해부터 만남을 시작한 남자친구는 20대 후반. 본격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가벼운 연애가 아닌, 결혼을 전제로 만나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다행히 수시로 결혼을 이야기하며 행복한 미래를 그리지만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 사실. 그래서일까? 적어도 내후년은 결혼이 성사되기를 소망하는 내게 노산은 결혼을 둘러싼 수많은 걱정거리 중 하나다. 방송인 몇몇이 난자를 얼리고, 관련 일화를 털어놓으며 이를 일종의 개그 소재로 삼을 때도 속없이 웃으며 볼 수는 없었다. 시험관 시술로 쌍둥이를 낳은 친구, 유산을 경험한 친구까지 주변에서 난임 부부 꽤 봐왔기 때문이다.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닌 현실. 연애가 깊어질수록 불안감은 점점 깊어져 갔다. 1년에 한 번씩 하는 건강검진이나 부인과 초음파로는 건강한 임신과 출산을 위한 세부 항목까지 체크하기에 역부족인 바, 소위 ‘웨딩 검진’을 받기로 했다.


    전화를 건 병원은 서울라헬여성의원. 추천받은 검사는 초음파검사와 혈액검사, 소변검사로 진행되는 기본 웨딩 검진 A였다. 조산이나 유산,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톡소플라마 감염을 유발할 반려동물도 없고(웨딩 검진 B에 해당), 생리주기가 불규칙하지 않아 난소 나이 검사도 꼭 필요치는 않다고 했다(웨딩 검진 C에 해당). 하지만 난소 나이라니, 궁금하지 아니한가! 결국 기본 웨딩 검진 A 패키지에 난소 나이 검사를 더한 웨딩 검진 C를 받기로 결정했다. 따로 생리주기에 맞춰 진행해야 하는 호르몬검사가 필요치 않은 내 경우에는 생리주기와는 상관없이, 한 번 방문으로 모든 검진이 가능한 상황. 미리 예약한 날짜에 맞춰 병원을 찾았다(난소 나이 검사만 따로 받을 수도 있고, 상세 성매개 질환 (성병 대신 권장되는 용어) 검사도 가능하니 참고). 먼저 진행한 초음파 검사. 하의를 모조리 벗고 전용 치마를 입은 채 전용 의자에 앉았다. 양다리를 걸개에 걸고 ‘쩍벌’ 자세를 취하니 민망함이 밀려왔다. 평소  ‘미혼 여성이면 어때, 내 건강은 내가 챙겨야지.’ 하는 현대여성다운 믿음으로 산부인과를 꾸준히 방문하지만 이것만큼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으니 원. “조금 불편하실 거예요. 힘 빼세요.” 노은비 원장의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봉처럼 생긴 기계가 질 속을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이어 모니터에 펼쳐 지는 흑백 영상. “지금 동그랗게 보이는 게 자궁이에요. 크게 문제 있어 보이는 건 없네요. 하얗게 보이는 자궁 내막도 괜찮으시고요. 왼쪽 난소와 오른쪽 난소 역시 깨끗해요.” 내 눈엔 거기서 거기 같은데 어찌나 잘 찾아내는지. 어쨌든 이상 없다는 말에 안심. 이어 1년에 한 번꼴로 실시하는 건강검진과 동일한 과정의 혈액검사와 소변검사가 진행됐다.


    결과를 듣기로 한 일주일 후. 쫄깃한 심장을 다독이며 병원을 찾았다. ‘지금은 100세 시대’라는 문구와 함께 만 32세, 생년월일, 이름으로 시작하는 보고서가 가지런히 인쇄돼 있었다. 결과는? 임신과 출산, 수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빈혈도 없고, 합병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간 기능도 정상. 임신이나 초기 유산, 태아의 지능 발달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갑상선호르몬도 정상. 성매개 감염 질환인 매독과 HIV 에이즈검사 역시 정상이란다. 단 임신중에 감염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는 A형 간염과 B형 간염은 항체가 없으니 예방접종을 권장(남성도 마찬가지). 착상이나 임신부 본인, 태아의 뼈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타민 D가 부족하니 3개월에 한 번 주기로 영양 주사를 맞고 평소에는 용량의 비타민 D 영양제 1000IU를 섭취해 이를 유지하라고도 했다. 태아수두를 일으킬 수 있는 수두는 아직 항체가 남아 있지만 기형을 초래할 수 있는 풍진은 항체가가 떨어졌으니 재접종을 권유하기도. 마지막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난소 나이. 콩닥콩닥. 마치 성적표를 받기 직전의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결과는 수치 2.87. 만 34세에 해당했다. 이럴 수가. 솔직히 첫 경험도 20대 후반으로 매우 늦은 편에 속하고, 나름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피부 나이만큼은 늘 두세 살씩 적게 나와 자랑 삼곤 했는데. 내 나이 만 32세보다 두 살이 많다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만약 30대에 검사했는데 0점대가 나오면 난소 기능이 많이 저하된 40대나 마찬가지입니다. 피임약을 먹었더라도 0점대라면 피임약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고요. 이 정도 수치는 괜찮아요.” 피임약 때문에 실제보다 한두 살 높게 나올 수 있고 이를 끊으면 수치가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며 원장이 위로를 건넸다. 난임의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전적인 요인과 잘못된 식습관, 음주, 흡연, 스트레스, 비만, 최근에는 환경호르몬까지 논의되고 있다고 덧붙이며. 수능이후 오랜만에 만난 반비례 그래프 역시 평균적으로 30대 후반부터는 염색체 정상인 난자의 비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임신과 출산 가능성 역시 급락했다. 떨어지는 그래프 각도만큼이나 두려움이 밀려오는 상황. ‘걱정할 만한 수치는 아니라지만 당장 예방접종을 맞고 비타민 D를 사야지. 결혼이 많이 늦어질 것 같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냉동 난자를 만들어두는 방법도 있겠군. 하지만 정말이지, 아직까진 냉동 단계까지 가고 싶지 않은 걸….’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 서둘러 남친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린 딩크족이 아니잖아. 내 나이를 생각해서 서둘러줄래?” - 프리랜스 에디터 C




    내 정자가 비정상이라니
    <엘르>에서 “정자검사 해볼래요?”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피어난 감정은 호기심이었다. 불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다른 이유 없이 눈으로 수없이 봐온(?) 내 정자들의 상태가 어떨지 궁금했으니까. 결혼한 지 1년이 넘은 서른다섯 살의 나. 출산을 계획하고 있던 시점에서 한 번쯤 확인해 두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남자가 그렇겠지만 살면서 한 번도 내 정자가 이상할 것이라고 상상해 본 적 없다. ‘특별한 질병도 없는데, 몸도 건강한데, 아직 젊은데 어떤 문제가 있을까?’라고 막연하게 상상했을 뿐. 하지만 예외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결혼 후에도 오랜 시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하던 고향 친구의 불임 원인은 남자에게 있었다. 운동을 좋아하고, 누구보다 건강했던 친구여서 충격이 꽤 컸다. 이유도 아주 구체적이었다. 정자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기형으로 변해 찌그러져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불임의 원인이 남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 당사자가 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늦추위가 한창이던 2월의 어느 주말, 검사를 위해 서울라헬여성의원을 찾았다. ‘여성의원’이라는 이름답게 여자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주로 혼자 검사를 받으러 온 듯한 여자들이 많았고,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신혼부부의 모습도 종종 보였다. 남자가 혼자인 것은 내가 유일했다. 마치 여대 캠퍼스 안에 들어온 남자처럼 어색함을 느끼던 찰나, 이름이 호명됐고 상담에 들어갔다. 먼저 궁금한 점을 물었다. ‘정자검사를 받으러 오는 남자가 많은가’라는 질문에 노은비 원장이 친절한 미소로 답했다. “혼자 오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대부분 여자친구 혹은 아내와 함께 오죠. 보통 불임 문제로 찾아오지만 남성 분들은 본인이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않아요. 그래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을 때 크게 당황하는 경우가 많죠.” 역시 예상한 대로다. 아마 그 친구 녀석도 같은 상황이었겠지. 어쩌면 남자들은 임신이라는 모든 과정 자체를 여자에게 떠넘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검사는 A, B, C형 간염의 항체검사와 에이즈, 매독검사가 포함된 웨딩 검진 남성 패키지와 추가로 선택한 정자검사. 정자검사의 결과는 정액의 양, 정액 1ml 안에 포함된 정자의 수, 정자의 운동성, 정자의 모양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한다. 어떤 문제로 정자의 건강이 영향받느냐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유전적인 문제, 좋지 않은 식습관, 과도한 음주, 불규칙한 생활 패턴 등.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요인들이었다. 설명을 듣고 본격적인 검사에 들어갔다. 검사는 크게 세 가지다. 피검사, 소변검사 그리고 정액검사. 이중에서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은 정액검사. 검사실로 가 작은 비커를 건네받고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흡사 비디오방처럼 생긴 작은 공간이었다. ‘음, 이곳에서 정액을 ‘추출’하는군.’ 어두운 조명에 소파와 세면대, 헤드폰이 연결된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선택 가능한 두 개의 영상 파일 중 하나는 일본판, 하나는 서양판. 이곳에서 손 씻고, 헤드폰을 끼고, 영상을 틀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임무를 수행했다. 수치심은 들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이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정자를 확인하곤 했을 테니까. 그렇게 비커에 결과물을 담아 담당자에게 건네주고 채혈과 소변을 채취한 후 검사를 마무리했다.


    3일 뒤에 나온 결과를 공개하자면 이렇다. ‘정액의 총양은 1.5ml 이상이 되면 정상인데 검사 결과 5.4ml로 정상. 정액 1ml당 들어 있는 정자 수는 천오백만(15x10^6) 마리 이상이어야 정상인데 검사 결과는 약 9백만마리(9.17x10^6)로 부족. 정자의 운동성은 40% 이상의 정자가 운동성을 갖고 있어야 정상이지만 검사 결과 39%로 운동성도 조금 감소. 아주 정상적인 모양을 가진 정자가 4% 이상은 되어야 정상인데 1.8%로 정상 모양의 정자 수 부족. 즉 기형 정자의 증가.’ 그렇다. 비정상이다. 현재의 검사 결과로는 희소정자증, 정자 운동성 감소, 기형 정자 증가로 인해 임신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설마 했지만 이런 결과가 나올 줄 몰랐다. 상황이 이렇다고 개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란다. 뻔한 방법이지만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개선하고, 정자 개선을 도화주는 영양제를 복용하면 상태가 호전될 수 있으니 이후 재검사를 실시해 보자고 했다. 기분은 덤덤했다. 오히려 본격적인 임신 작전에 돌입하기 전에 문제를 알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이를 가지기도 전에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섣부른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에겐 아직 시간이 있고, 건강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가 있으니까. 모든 설명을 듣고 난 후 갑자기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 작가 P